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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관심사/드라마

길모어 걸스 (Gilmore Girls) 전 시즌 리뷰

by Ninab 2020. 11. 19.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드디어, 드디어!! 모든 시즌을 다 봤어요. 애증의 드라마라 리뷰를 쓸까 말까 고민을 조금 오래 했는데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내용도 가물가물해지고 다시 보고 싶어 지지 않을까 싶어서, 절대 다시 보지는 말라는 뜻으로 리뷰를 남겨 보아요. 

 

처음 길모어 걸스를 알게 된 건 한국 케이블 방송이었는데요, 어느 방송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해 보니 온스타일 넷이었다고 하네요. 당시의 제게는 '길모어 걸스'가 '사브리나', '섹스 앤 더 시티', '가십걸'처럼 좀 신선했어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한국 드라마에는 이렇게 소소하면서 여성 캐릭터들의 갈등이나 사건이 주축이고 남성 캐릭터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스토리가 딱히 없잖아요. 음.. 그나마 한국 드라마 중에서 기억에 남는 건, 최근 종영한 '검블유'나 '청춘시대' 정도네요. 와.. 예전에는 없었나? 싶어서 생각을 쥐어짜고 쥐어짜서 기억과 구글링에 성공했어요. 2005년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 도 있었네요. 그때도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라고 소개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는 제가 모르는 드라마가 분명 더 있겠지만 못 봤거나, 재미가 없었나 봐요. 

 

어쨌든, 넷플릭스에서 새로 만든 시즌 8이라고 부를만한 한 해의 스케치까지 모두 달렸어요. 약 한 달 동안 시즌 8개를 다 본 것 같아요. 한 시즌당 22개의 에피가 있었고 시즌 8은 90분짜리가 4편이거든요. 상당히... 뭐랄까 진짜 상당히 힘든 스케줄이었는데 다 봤네요 ㅎㅎ (모든 게 취소되는 시기였어서.. 집에서 보낼 시간이 참 많았어요. ㅠㅠ)

 

' 길모어 걸스 : 한해의 스케치 ' 캡쳐화면. 여전한 길모어가 세모녀와 루크, 그리고..? 왜..? ㅋㅋㅋ

2020년의 제 눈에는 참 거슬리는 게 많은 드라마인데도, 끝까지 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캐릭터들의 힘인 것 같아요. 주인공인 철없는 엄마 로렐라이와,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철든 딸 로리의 캐미가 정말 좋거든요. 거기에 전 세계 모든 딸과 어머니의 갈등을 응축시켜 탄생시킨 것 같은 로렐라이의 어머니 에밀리의 캐릭터가 참 재밌어요. 어릴 때 베프 같은 한국인 친구 레인과 마음을 터놓은 직장동료 수키도 그렇고요. 여기에 보수적이지만 따뜻한 아버지 리처드 길모어, 영혼의 단짝 루크, 첫사랑 딘.. 매력적인 캐릭터가 정말 너무 많아요.

 

게다가 이 드라마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건, 주인공 모녀가 살고 있는 '스타스 할로우'라는 가상의 시골 동네인데요. 이 스타스 할로우를 구성하는 주민들과 주민회의, 축제, 상점들, 학교, 교회 등 모든 것이 굉장히 정다우면서도 코믹해요. 어릴 때 인형 놀이하면서 상상하던 그 작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느낌이거든요. 막 그렇게 음모가 있거나 거대한 사건이 펼쳐지면서 파헤치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 엄마랑 싸우고 화해하고 축제에 참여하는데 옆집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남자 친구랑 친해지니까 가장 친한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적어져서 서로 오해했다가 서로 이해하게 된다든가.. 뭐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이거든요.

 

제가 빨간 머리 앤(소설/드라마/만화 모두)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현대판 빨간 머리 앤인것 같아요. 앤의 어릴때 사고뭉치 같고 감성적인 면은 엄마인 로렐라이가, 공부를 잘하면서 선생님이 되어가면서 수줍음이 있는 면은 로리가 닮은 것 같지 않나요? 엄격한 마릴라를 닮은 에밀리, 자상한 메튜를 닮은 리차드, 길버트는 딘, 제스, 로건이 모두 조금씩 닮은 것 같아요. 보면서 진짜 길버트는 누굴까? 생각했는데요. 아마 시즌 9가 나온다고 하면 로건이 아닐까요? ( 소근소근. 빨간머리 앤에서도 길버트는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잖아요.) 물론 비교불가 패리스는 진짜 독보적이에요. 빨간머리 앤의 평화로움을 길모어 걸스만의 공격적인 광기로 코믹하게 바꾸는 게 패리스의 힘이죠. 

 

마을 이장님 같은 캐릭터, 동네 찌질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는 캐릭터, 매력만점 농부, 철없는 기타리스트, 마을 일이라면 빠지지 않는 다재다능 춤/노래 선생님, 따습지만 너무 애정이 가득해 가끔 불편하기도 한 수다쟁이 옆집 아주머니, 진짜 교장선생님 같은 교장선생님, 진짜 목사님 같은 목사님 등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네요. 

 

로리가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고, 다시 성년이 되는 모든 여정을 한 달만에 봤네요. 그동안 로렐라이는 자기 여관을 차리고 결혼하려다 파혼하고,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결혼해요. 두 캐릭터 모두 시즌을 거듭하며 성장한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시즌이 길어지는 모든 드라마들처럼 캐릭터가 많이 깨지고 파괴되는 것도 어쩔 수 없지요. 이야기를 계속 이끌어가려면, 아무리 소소한 이야기들로만 꾸려간다고 해도 주축이 되는 갈등이 있어야 하는데 갈등을 많이 만들어 낼수록 피곤해지거든요.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캐릭터는 혼란 속에 내던져질 수밖에 없어요. 아무래도 작가가 엄마인 로렐라이보다는 로리를 지켜주고 싶었는지, 온갖 짜증이 나는 에피는 엄마에게 많이 갔어요. 완벽한 로리가 깨지는 것보다는 잦은 실수에도 이해가 가는 로렐라이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이고, 상처가 있어도 이겨 내고, 딸에게는 가장 좋은 엄마이자 친구인 매력적인 로렐라이가 이기적이고, 생각이 짧고, 반성할 줄 모르는 답답한 인물이 되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지요. 다만 로리마저 엄마처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상처를 주면서도 자기가 가장 우선인 캐릭터로 변해가면서, 또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에피가 나올수록 많이 피로해졌어요. 

 

이 주연 캐릭터들의 파괴가 동양인, 여성, 게이, 비만인, 각종 유명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조롱하는 대사들이나 상황 묘사보다 더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애증'의 드라마라고 소개한 거예요. 한국인 설정으로 나오는 로리의 베프, 레인 킴은 그 자체로도 굉장히 동양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인데 레인 킴의 어머니와 가족들 묘사가 정말 기겁을 할 정도거든요. 물론 프랑스에서 온 흑인 남성 미셸이나 길모어 걸스 본인들이 여자이면서도 '여성' 카테고리 안에 가두는 시선도 그렇고요.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심하긴 했어요. 그래도 66년생 작가인 에이미 셔먼의 유머 코드가 참 독특해서 마치 동네 미용실에서 아주머니들끼리 거리낌 없이 농담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어쩌다 찾아간 동네 미용실에서 아주머니들끼리 깔깔거리면서 심한 농담을 하는데 저는 앉아서 끼어들 수는 없고, 웃기 싫은데 웃긴 거 있잖아요. 딱 그 느낌인데,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머리 다 하고도 거울 보는 척하면서 앉아 있게 되는 거죠. 

 

시즌 9가 나올까요? 

 

기대되지 않지만, 나오면 볼 것 같아요.

에고, 리뷰라고 쓰고 그냥 시끄럽게 수다를 떤 것 같은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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