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가 한국 남자랑 서로 모국어인 한국어로 다투어도 그렇게나 말이 통하지 않는데, 국제연애중인 우린 오죽할까요. 좋을때는 모든 커플들이 그러하듯이 문제가 정말 1도 없어요. 너를 사랑하고, 너도 나를 사랑하고, 세상만사가 찬란하고 밝죠. 그런데 사소한 오해에서 시작한 일이 연애초반, 우리에겐 참으로 가빴어요. 몇마디 말로 오해를 풀수있었고, 서로 다른 문화에 대해 설명할수 있었는데도 자꾸 시간은 흘렀죠. 또 제 독일어는 도통 늘질 않았기 때문에 엉터리 독일어로 숨이 차도록 흥분해서 되는 대로 아는 말들을 모조리 퍼붓기 바빴던것 같아요. 그러면서, 싸울때조차 나는 문법이나 단어들을 떠올려야 하는데, 쟤는 저렇게 자기 나라 말로 편하게 하다니! 이런 이유로 남자친구가 더욱 꼴도 보기 싫게 미웠었어요. 약도 오르고요. 남자친구도 화가나면, 늘 절 배려해서 해주는 베이비 토그카 아니라, 난생 처음 듣는 어려운 단어들도 막 쏟아 뱉죠. 아마도 자기 마음을 다 표현하고 싶어서 그랬을 것인데, 제 입장에서는 그게 또 굉장히 화가 났어요.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아무렇게나 어려운 단어를 일부러 쓰는 것 같고 말이죠. 국제 연애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런 다툼에서 제가 논리로 따질수 없다는건 정말 생경한 경험이었어요. 인생에서 내가 연애중에 말로 질거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이건 논리나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온통 언어에 관한 문제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끊임 없이 다투다가 결정적으로 제 머리를 쾅!하고 때려박은 건, 케네스의 " 넌 어차피 이해하지 못하잖아. " 라는 말 이었어요. 제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의도로 말한거였다면 대성공이었죠. 독일어는 저에게 새로운 아킬레스건이었거든요. 그 말 뜻이 내가 어차피 자기 마음을 이해 못한다거나, 자기 상황을 이해못한다거나 하는 문제였더라도 저에게는 그냥 너의 독일어는 형편없어!로 왜곡해서 들렸죠. 저도 모르게 그러면 잘이해해주는 독일여자를 만날것이지 왜 나를 만나서 너는 그렇게 고생하는 거냐고, 당장이라도 독일여자 만나러 가라는 식의 감정적일 말을 뱉기도 했고요. 그때 이미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그렇게 화장이 다 망쳐진채로 거리 위에서 한참을 다퉜었습니다.
이제 이 연애도 곧 1년이 되가요. 우리는 제법 잘 싸울줄 아는 커플로 성장했습니다. 연애초반 누가 누굴 더 사랑하냐며 더 싸운것만 같다면, 이제는 더이상 상처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렇지만 어젯밤에도 우리는 다퉜어요. 한번도 다투지 않는 연애라는게 존재할까요? 아.. 저희도 네달째에 처음으로 싸웠으니까, 그때까지는 존재했던것 같네요.
그럼 우리는 도대체 왜 싸우는 걸까요. 별의별 이유가 있었지만, 주로 서로에게 불안해서 그런것 같아요. 어젯밤에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왜 그렇게 겁이 많은거냐고. 내가 그렇게 너를 사랑한다고 수없이 수많은 날들에 고백하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요. 지나간 연애에서 받은 상처때문인것 같다고 대답하더라구요. 저도 지난 연애에서 받은 상처가 커서 이해할수 있었죠. 그리고 또 연애라는게 원래 불확실하기도 하고요. 미친듯이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이 지나면 언젠간 그런 열정이 식을 날이 올거고, 언젠가는 믿음이 깨질수도 있겠죠. 예전에 폭죽놀이가 한참인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다리위를 건너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눴지요. 이 다리위에 수많은 열쇠가 묶여있는데 왜 그런지 아니? 켄이 웃으면서 저한테 너도 열쇠고리 매달고 싶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아니, 나는 열쇠고리 만들고 싶지 않아. 저 열쇠는 자기들 사랑이 불안해서 그런거야. 사랑이 불안하니까 확실한 무언가로 흔적을 남기고 싶은거지. 나는 우리 사랑이 이미 확실하다고 믿고 싶으니까 저 열쇠고리를 달지 않을래. 우리 사랑은 이미 확실한거지? ... 지금 생각하니까 엄청 오글거리네요. 그래도 그런 이야기까지 나눌정도로 우리한테는 확실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켄도 대답했고요. 당연하다고요.
그런데 너무나 쉽게 깨져버리고, 다쳐버리고 때로는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려요. 속상하죠. 속상한 마음을 완전하게 터놓을 말재간이 안되니 더욱더 속상하구요.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는 케네스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수 없으니 더욱 속상해요. 연인이 쓰는 언어가 내 나라 말이 아니라는건 이렇게나 슬픈걸까요. 이미 일년을 함께 했고 우리들만의 언어를 새로 창조하기에 이르렀는데도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네요.
언젠가는 그냥 눈빛만으로도, 그리고 숨결만으로도 서로를 보듬어줄 날이 올까요?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까요. 독일어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써온 한국인들을 자주 만나지만, 아직까지도 모국어처럼 구사하지 못해요. 어릴때배운 분들이 아니라면요. 잠시잠깐이라도 아주 어릴때 배웠던 분들은 정말 모국어처럼 말하죠. 서른이 넘어 배우기 시작한 새로운 언어라, 아마도 저는 평생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독일어가 저의 언어가 될수는 없을거예요. 그 말은, 평생동안 켄과 함께하고 싶다면 이런 장애물이 있다는 걸 올곧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더라도 어쩔수 없어요. 저는 이미 결정했으니까요. 저는 제 연인과 한 약속과,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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