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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국제연애

국제연애, 해외생활 중 향수병을 사랑으로 이겨내는 법.

by Ninab 2017. 11. 9.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얼마전에 남자친구 앞에서 또다시 울음이 터져나왔어요. 이번에는 우리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저번에 글로 쓰기도 했던 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다시 찾아온 향수병 때문이었죠. 향수병은 제게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느껴본적 없었던 새로운 감정이예요. 저는 수원에서 모든 학창시절을 보냈고, 서울에서 이십대를 보냈지만 서울에서는 향수병을 느낀적이 없었죠. 오히려 수원보다는 서울이 제게는 더 저의 터전같았고요. 금방 익숙해졌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 자취 생활중에 갑자기 수원으로 돌아가서 엄마 밥을 먹고 돌아온적은 있었어도 집이 그립다는 감정은 잘 몰랐어요. 제게 집은 곧 엄마였고 엄마가 곧 집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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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엄마가 아니라 한국이, 한국이 정말 미치도록 그리웠어요. 


남자친구의 친한 친구인 알마의 생일 파티가 있었어요. 처음에 만나기로 했던 곳은 방 탈출 게임을 할수 있는 곳이었죠. 여자애들과도 격없이 친하게 잘 지내는 남자친구였지만 생일파티에 초대된 남자가 제 남자친구뿐이었을 거란 생각은 못했었어요. 다른 여자애들이 다 도착한 뒤에 남자가 제 남자친구뿐이어서 살짝 당황했어요. 그렇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게임이었어요. 한시간동안 방안에 있는 힌트들을 찾아 암호를 풀고, 열쇠를 얻으면 그 열쇠로 다른 힌트들을 찾을수 있었죠. 최종 목적은 방을 탈출하는 방의 열쇠를 찾아낸는 거였어요. 제한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문제에 집중해서 열심히 토론하고 의견을 빠르게 나누더라구요. 그곳에서 저는 뭘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몰라 했어요. 여자 네명이서 빠른 독일어로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수 있는 말들을 쉼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내뱉어 내는데, 도저히 제가 낄 자리가 없더라구요. 어디까지 진행되가고 있는 건지 감을 잡을수조차 없었어요. 잠깐 멈춰봐. 이게 뭐라고? 라는 질문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같았죠. 이미 서로가 십년지기 친구들이고 저는 이제 대여섯번 얼굴을 본 사이이니까 당연했어요. 아마 한국애들이었어도 비슷한 분위기였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걔네들은 열심히 게임에 응한거였고, 저는 자연스레 뒤로 빠지게 된 상황이었죠. 


우리의 미션은 결국 겨우 몇단계만을 남겨놓고 실패했어요. 저는 남자친구에게 뒤에서 화를 냈고요. 나를 이곳에 왜 초대한건지 전혀 이해할수 없다구요. 사실 이미 그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둘이러 이런 말을 했었어요. 한국에서 방탈출게임을 하는 방송을 여러번 봤는데 독일어로 함께 내가 네 친구들과 이런걸 해낼 자신이 전혀 없다고요. 아무것도 이해 못하고 혼자서 어버버 할것 같으니 가기 싫다구요. 남자친구는 제게 모든 상황을 잘 설명해 줄수 있고 다 도와줄테니 걱정말라고 했었고요. 그런데요? 그 방에 가니 남자친구도 그 여자 네명에 끼지 못하는거예요. 전혀요. 둘이서 정말 말그대로 방에 한시간동안 갇혀 있었답니다. 그 상황에서 누가 재미를 느낄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론 최악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남자친구의 친구의 생일파티니까 예의를 한껏 차려서 아무렇지 않은척을 해야했지요. 그게 더 비참한 기분이었어요. 


이 비참한 기분은 파티에서도 계속 되더라구요. 평상시 술자리에서 그 친구들과 저는 아무 문제도 없었고 하하호호 잘 놀았었어요.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다 삐그덕 거렸죠. 알마의 집에 들어가보니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한가득이었어요. 예쁘고 여성스러운 알마의 분위기와 딱어울렸고요. 스시와 피자를 시켜서 먹으며 술을 마셨죠. 티비엔 브루노마스와 저스틴팀버레이크, 비욘세와 마이클잭슨의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요. 샴페인을 마시고 얼굴에 가면을 쓰고 사진을 찍기도 하구요. 그렇게 수다를 떨었어요. 전혀 재미있지 않았어요. 여자들중 한명은 임신중이었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더라구요. 독일에도 시어머니를 욕하는 문화가 이정도로 자리잡혀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여자들끼리의 밤' 이런 느낌이었죠. 십년된 친구들과 다들 그렇지 않나요? 걔는 요즘 뭐하니? 아 그때 기억나? 이런거요. 마찬가지였어요. 저한테는 전혀 낯설은 이야기었고 재미 없었어요. 한마디로 못올 곳에 온 느낌이었고 지루했어요. 티비에 나오는 부루노 마스 마저 그날엔 매력이 하나도 없었어요. 웃고 싶었는데 웃긴 대목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때부터 갑자기 한국의 친구들이 그리워졌죠. 파전에 막걸리 놓고 지난 이야기하며 서로 비밀없이 모든걸 털어놓던 제 친구들이요. 그리고 오늘 했던 게임을 한국에서 제 친구들과 했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이런 생각도 했죠. 그렇게 지루했던 시어머니 이야기도 제 친구의 시어머니라면 앞뒤 안보고 맘껏 같이 욕해줬을거구요. 여기선 안타까운 표정밖에 지어주질 못했지만요. 제가 먼저 나서서 너 걔 기억나나며, 친구의 과거사를 맘껏 들추고 깔깔거렸겠죠. 브루노 마스니 비욘세니 별 관심도 없는 가수들 말고 우리들 시절의 유행곡이나 요즘 좋아하는 아이유 노래를 틀었을 거구요. 맛있는 곱창집을 찾아 홍대나 종로 혹은 강남 거리를 시끄럽게 깔깔거리며 돌아다녔겠죠. 


그냥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그리워졌어요. 제가 도저히 신나하질 않으니까 남자친구가 눈치껏 먼저 일어나자고 해서 밖으로 빠져나왔죠. 나오자마자 울음이 터졌어요. 그리고 가장 처음 내뱉은 말이, 나도 한국에서 내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한국에 가고싶어. 였고요. 제가 내뱉은 말에 스스로 놀랐지만 남자친구도 굉장히 당황해 하고 미안해했어요. 남자친구의 친구들이 나쁜게 아니었고 잘못한게 없었는데도요. 그냥 제가 이상했어요. 심각한 향수병에 걸렸다고 느꼈죠. 남의 파티에 와서 하루종일 우울하더니 스스로 왕따처럼 행동하고 결국엔 일찍 자리를 떴으니까요. 제가 더 미안했어요. 노력해서 한껏 웃었고 한껏 먹고 마셨지만 속이 휑한걸 제가 잘 숨겼었을까요?



한참을 울었고 쉽게 진정이 되질 않았지만, 결국엔 이성을 찾을수 있었어요. 그리고 한동안 생각했어요. 내가 이렇게 평생을 독일에서 살수있을까? 하구요. 항상 그래왔지만, 요즘들어 남자친구와 부쩍 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함께 미래를 헤쳐나가는 것은 당연하고 그 장소가 어디일지를 생각하는 단계가 되었어요. 케네스는 한국에 일할곳만 있다면 한국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해줬죠. 그 말에 우리 관계가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었습니다. 만난지 삼개월째에, 우리를 위해서 너 한국으로 나와 함께 갈수 있냐는 질문에 칼같이 안된다고 했었었거든요. 내 직업은? 돈은? 이라며 차갑게 쏘아 물었었어요. 당시에 저도 하긴 그렇지, 하고 받아들였던것 같아요. 그땐 저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요. 


이제는 도저히 서로를 떼어놓고 미래를 상상할수 없어요. 이성적으로 판단해봤을때도 케네스와 함께하며 힘든 것들을 함께 이겨나가는 삶과, 한국에서 케네스 없이 사는 삶을 비교하면 답이 나와요. 한국이 그립다고 한국에 가면 한국이 그리웠던것 몇배 이상으로 케네스가 그립겠죠. 상실감은 이루말할수 없을거구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렇다면 한국에서 함께 사는 삶을 고려해봐야해요. 하지만 답이 금방 나와버리고 말죠. 남자친구가 독일에서보다 좋은 직장을 한국에서 구할 확률은 높지 않아요. 비자를 받는것도 힘들고요. 저야 지금과 비슷한 수준의 직장으로 옮겨갈수는 있을테지만, 독일에서 남자친구와 제가 받을수 있는 모든 복지혜택은 포기해야겠죠. 예를들어 노후에 나올 연금같은거요. 만약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는다해도... 아, 그건 도저히 자신이 없네요. 독일도 인종차별이 존재하지만, 한국에 비할바는 아니거든요. 게다가 남자친구는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른바 동남아 사람이죠. 아무리 독일에서 자랐다고 해도 한국인들 눈에는 동남아 사람이니까요.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할수록 더 힘이 들어요. 답이 늘 독일에서 사는것이 옳다, 거든요. 이 답은 사실 금방 얻어냈어요. 몇마디 대화가 오간뒤에 바로 알수 있었죠. 평상시에도 늘 알고 있던 일이니까 잠깐 잊더라도 다시 금방 이 답으로 돌아와요. 그렇다고 기분이 괜찮아 지는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겨낼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걸 지켜보는 남자친구도 항상 힘들어 하구요. 대신 남자친구는 제게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어요. 일주일 혹은 한달동안 한국에서 머물면서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독일에서 정말 평생 살아도 될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것. 혹은 독일에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드려고 노력해 보는것. 그리고 한동안 자신의 친구나 가족과는 만나지 않고 조금 휴식을 갖는 것 등등이요. 제가 원한다면 다시는 오늘 만난 친구들과는 만나지 않겠다고도 말했어요. 물론 그걸 제가 원하지는 않았어요. 남자친구의 추억과 우정도 저의 우정만큼이나 소중한 거니까요. 


이날밤에 우리의 긴긴 이야기는 대강 마무리 되었어요. 아마도 며칠뒤 혹은 몇달뒤 다시 똑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결론을 얻고, 다시 질문을 하고 더 좋은 방법이 없는지를 고민하겠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같아요. 불확실해서 불안하고 불안함에서 오는 모든 것들이 사람을 때로는 힘들고 외롭게 하죠. 저의 향수병을 촉발시킨 원인이 무엇이었던간에 진짜 원인은 제 맘속에 있었던 거겠죠. 표면적으로는 알마의 생일파티에서 고립된 감정이 원인이었지만, 제 속에 제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우울감보다는 무료함을 느꼈을거예요. 끝나지 않을 이야기죠..





기분이 좀 괜찮아지자 화제가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이날 밤 제가 좋아하는 남자 독백중의 하나를 남자친구와 함께 영어로, 독일어로, 한국어로 여러번 낭독했어요. 남친에게 이 대사를 알려주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 독백중의 하나고 이 연극의 내용을 알려줬죠. 여러번 읽은뒤에 전체 희곡을 처음부터 같이 읽어보기도 했어요. 


어느 정신나간 놈이 제 목을 스스로 매겠어요? 저는 오늘도 11층이나 되는 계단을 뛰어내려 왔어요.

그러다 갑자기 엄춰섰죠. 듣고 계세요? 아마 그 빌딩 중간쯤이었을 겁니다. 듣고있냐구요!

전 거기서서 하늘을 바라봤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보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 먹을 것, 그리고 앉아서 담배 한 모금 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요.

전 만년필을 손에 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무엇때문에 내가 이걸 훔쳤을까? 난 왜 마음에도 없는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쓰지?

내가 원하는 건 나를 바보로 만드는 저 경멸스러운 사무실에 있는게 아니라 언제나 나를 기다려줄 저 넓은 들판에 있다고!

전 왜 이렇게 말을 못할까요.. 내가 원하는게 이거라고 왜 당당히 말을 못하게 됐을까요..

전 특별하지도 않아요. 보잘 것 없는 놈이라구요! 아버지도 마찬가지구요!

아버지도 제가 집에 뭘 더 가져갈거라고 생각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전 쓰레기 같은 놈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구요!! 이제.. 그만 절 좀 놓아주세요..

아버지의 허황된 꿈을 포기하고 저 좀 그만 내버려 두세요..


번역이 엉망인것밖에 못찾겠네요. 더 좋은 방법이 있죠. 아래 유투브 장면을 링크를 걸어놓았어요. 이 장면이예요.




아버지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자란 비프가 아버지에게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이죠. 물론 이 연극의 핵심은 아들인 비프보다 아버지인 윌리에게 있지요. 그렇지만 여럿 매력적인 남자배우들이 연습실에서 밤이고 낮이고 저 독백대사를 연습한걸 봐왔기에 저에겐 이 장면이 정말 특별해요. 그 배우들과 토론도 많이 했었어요. 왜 비프가 이렇게 행동할수밖에 없었는지를요.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모의 기대나 어린날에 스스로에게 걸었던 기대에 한껏 부응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들의 기대에 모두 맞추며 산다고 행복한 삶인걸까요. 인생 그 어디에도 이정표가 없죠. 누군가 이쪽이 행복으로 가는길이라고 알려주는 이정표를 인생곳곳에 세워두었다면 우리는 이런 연극 작품은 만나볼수도 없었을거예요. 알쓸신잡에서 인용되었던 오스카와일드의 말처럼 알수 없는 것이 상인거죠. 


당장 달려갈수도 없는 한국을 그리워 하고, 함께 할수 없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그토록 바라면서 슬퍼하는 날들이 많지만요. 오늘은 이런 방식으로, 내일은 또 다른 방식으로 제 어깨를 두드려주는 연인이 있기에 그나마 향수병을 이겨낼수 있었어요. 이 희곡의 이 장면이 위로해주기도 했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희곡을 함께 읽으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한껏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연기를 하는 켄덕분이었죠.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수없는 인생이지만 적어도 누구와 함께 하는 인생인지를 알수있었던 날이었어요. 그리움은 사랑으로 덮어놓고 불안함은 하나의 확신으로 이겨냈습니다. 나에게만 맞고 누군가에게는 틀린 방법일수도 있겠지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의식의 흐름대로 써간 글이지만, 누가 뭐라할까요.

이곳은 니나의 타게부흐, 니나의 일기장인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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