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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근황

자유의 몸이 된 도비는 행복합니다

by 니나:) 2023.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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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퇴사는 행복이고 기쁨이에요. 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팠던 곳들이 갑자기 괜찮아지고 다이어트를 하고 있지도 않은데 살이 빠지고 피부가 좋아졌어요. 만병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더니, 제 스트레스의 근원이 회사였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냈던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나 봐요. 지긋지긋한 사내정치도 어지간히 싫었지만 가장 싫었던 건 아무래도 회사원처럼 되어가는 저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회사라는 조직은 조직을 위해서 개개인이 희생을 할 수밖에 없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구조니까요.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응원해 주는 노사관계란 마치 판타지죠. 그런 회사가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몇몇 친구들은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만 아쉽게도 저는 겪어본 적이 없네요. 

 

사진: Unsplash의Fuu J

 

공식적으로는 9월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월급을 확인하고, 5년간 아등바등 애썼던 모든 서류와 자료들을 집에서 싹 지워버리고 나니 정말 너무나 해방된 기분이었어요. 완전히 벗어나고 나서야 저한테 얼마나 그 삶이 버거웠는지를 깨달았어요. 일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적성에 잘 맞아 오히려 정말 재밌게 즐기면서 했어요. 다만 그냥 원하지 않는 기싸움에 휘말리면서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는 사실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싫어하는 것은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는데 제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괴롭게 했어요.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에너지를 쓸 곳이 공감과 기쁨밖에 없는데 싫다는 감정은 몇 배의 에너지를 쓰고도 허망한 자괴감밖에 들지 않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잘 지내보려고 노력해도 설득하지 못한다면 서로 에너지 낭비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데 더 이상 좋은 관계를 위한 설득도 하기 싫어졌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되돌이표처럼 리셋이 되니 어느 시점에서는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회사 탓을 하거나 상대방 탓을 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저의 입장만 볼 수 있으니까요. 반대의 상황에서도 저를 얼마든지 탓할 수 있잖아요. 

 

퇴사를 고민해보지 않은 직장인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는 더 좋은 대안이 없다거나, 그만두고나서 생활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다행히도 퇴사 직후 바로 실업급여를 신청했고 이번달부터 바로 지급이 됩니다. 회사의 사정이 아무리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가 원했다면 계속해서 회사를 다녔을 것 같지만, 저는 전혀 더 노력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제 인생에서 5년이나 한 곳에서 보냈다니.. 이 사실 때문에 제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한 시점에는 망설임이 더 이상 필요 없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한잔을 합니다. 회사생활 때는 다 깨우지 못한 몸뚱이에 억지로 카페인을 밀어 넣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여유롭게 향기가 좋아서 그 자체로 즐기고 있어요. 주말에야 느낄 수 있었던 여유로운 아침을 매일 맞이할 수 있어요. 시간이 넉넉해지니 글도 잔뜩 읽고, 쓰고 또 긴 시간 동안 미루기만 했던 유튜브도 다시 편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2년 내내 미뤘던 파리 가족여행 영상도 드디어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백수가 가장 바쁜 것 아시나요? 아침부터 밤까지 저를 위한 활동들로 시간표를 가득 채우니 정말이지 시간이 너무 모자란데, 반대로 에너지는 끝없이 샘솟는 느낌입니다. 모든 우울과 슬픔 괴로운 감정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었기 때문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고 닥친 상황에 맞게 가장 최적의 직장을 구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질과 만족도 인 것 같습니다. 제가 선택하고 살아가고 행복해하는 이 완벽한 생활이 정말 너무나 좋습니다. 계획은 잔뜩 있지만, 당분간은 최대한 여유 있게 즐겨보려고 합니다. 퇴사를 망설이고 있다면 무엇 때문이 신가요? 돈, 가족, 안정된 생활? 때로는 결정을 해버리고 나서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모하더라도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가요. 이곳을 벗어나면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 같나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돈'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것이 무한한 인생의 한 단막이라면 괜찮겠지만, 불행하게도 인생은 유한해요. 너무나 짧죠. 저도 5년이 지났으니까 아깝다고 생각이 든 것 같아요.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월급을 빼고도 사람이나 커리어, 성장 등 여러 가지가 된다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 보겠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만큼 시간이 아까운 게 있을까요? 

 

저는 10년동안 한국에서 공연예술을 하던 연극배우였고, 연극연출가였습니다. 독일에 와서 몇 군데의 직장생활을 해봤고, 가장 오래 일한 곳이 이번에 5년간 근무한 회사였어요. 물론 다 따져보자면 한국의 제 소속 극단이 가장 오래 일한 곳이겠지만, 일반적인 회사와는 생활이 많이 다르죠. 인생의 목표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었기 때문에 돈을 위한 희생이 전혀 없는 순수한 제 의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다시 살아보기로 한 인생에서 또다시 실행착오를 겪은 것과 같습니다. 꿈만을 위한 직업에서 돈을 벌기 위한 직업으로 옮겨왔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시기가 온 거죠. 저는 이런 혼란스럽고 변화가 많은 순간을 정말 사랑합니다. 살아있다고 느껴져요. 살짝 느껴지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마치 커피의 쓴맛이나 와인의 떫은맛과 같아요. 이런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게 없다면 삶이 얼마나 지루할까요. 

 

다음에 무엇이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무엇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가 인생이고, 제가 행복을 느끼는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갖는 두려움, 막막함이 좋아요. 이럴 때 창밖을 내다보며 깊게 숨을 내쉬면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요. 왜냐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말이에요.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도비는 해리에게 몰래 일기장에 숨긴 더러운 양말한짝을 건네받아 자유의 몸이 됩니다. 도비의 주인이었던 루시우스(말포이 아빠) 의지와는 상관없었죠. 도비가 집요정계약을 해지하기 싫었다면 아무의미 없는 그저그런 양말 한짝이었지만, 그거 아시나요? 도비는 자유를 원했어요. 그래서 루시우스에 맞서 싸울수도 있었고, 덤블도어 밑에서 일할 있었죠.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해리포터를 돕기도 하고요. 도비가 그저 그런 집요정이었다면, 불행한 계약을 끝낼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Dobby is free! 는 엄청난 상징성이 있는 밈이된 것 같아요. 

 

아직도 저는 제 행복을 위해 더 좋은 대안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게 그걸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준 독일의 실업급여 시스템은 뭐랄까.. 그간 독일생활을 꾹 참고 견뎌온 제게 작은 보상이겠고요. 앞으로 1년의 시간이 있습니다. 삶은 경쟁도 아니고 전쟁도 아녜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루이제 린저의 소설 제목처럼 '생의 한가운데'에 아주 단단하고 꼿꼿하게 서있으려고 계속해서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찾아와 주시는 감사한 여러분의 행복도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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