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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근황

지나간 어린 날들이 그리워지는 _ 그리고 또 이런걸 곱씹는 예민한 나를 위해

by Ninab 2021. 10. 10.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 어제 중학교 동창 친구에게 카톡 연락이 왔어요. 뜬금, 옛날 사진 한 장이 단톡방에 딱 전송이 된 거죠. 함께 스페인 여행을 갔었을 때 저를 찍은 사진인데 몇 년 전 사진인데도 엄청 옛날 같아서 깔깔 웃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시작되었습니다. 흑역사 공유하기 시간이요. 

 

분위기는 점차 과열되었고, 핸드폰 앨범에서 끝나지 않았죠. 저는 서랍속 깊게 묻어놓은 디지털카메라의 SD 카드를 진짜 몇 년 만에 꺼냈어요. 자기애로 똘똘 뭉친 셀카들 사이로 연기 연습 영상이나 술자리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연기, 연애, 술.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제 어린 날들이었어요. 그리고 친구들의 재밌는 모습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계속 웃었습니다. 저 때 머리스타일 왜 저래, 저 때 우리 진짜 말랐다, 저때는 망가졌어도 어려서 예쁘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뭔가 뭐.. 그렇죠, 좀 아련해졌어요. 

 

두근두근 우리의 흑역사 파일

 

저는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는 편인것 같아요. 20살 때라고 과거를 기억하지 않거나, 후회하지 않거나 하지 않았어요. 이것도 일종의 성향 같아요. 얼마 전에 2편이 나온 '달러구트 꿈백화점'에 보면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꿈에 관련된 제자들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굳이 뽑자면, 과거에 얽매였다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과거를 자주 추억하는 편인 듯합니다. 현재가 불만족스럽거나 과거를 바꾸고 싶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감성적인 면이 그런 것 같아요. 독일의 일상이 저는 대체로 정말 만족스럽고 편안합니다만, 과거에 열정으로 똘똘 뭉쳐서 이것저것 부족하게 살던 시절을 가끔 떠올려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어렸던 어린아이 시절도 종종 생각하고요.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시기의 날들이나, 며칠 전의 일들도 자주 곱씹어보곤 해요.

 

연기 수업중에 이런 말을 듣곤 했어요. 삶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언제 어디에든 사용될 수 있으니 잘 기억하는 연습을 항상 해야 한다고요. 잔인하지만 그렇게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둔 경험이 필요한때에 꺼내 쓸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다고요. 10대 중반부터 해왔던 직업병일까요? 아니면 이럴 때 편하게 쓸 수 있는 단순한 핑계일까요? 근 8년 내 연기 경험이 전무한 상황인데도 아직도 이때의 습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후회를 잘 하지 않거나, 과거를 추억하고 감상에 젖기보다는 미래 지향적인 성격을 가졌던 예전 남자 친구가 떠오르네요.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타인에 의해 상처를 잘 받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어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이 관찰하고 닮고 싶어 했었어요. 오히려 절대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타고난 '다른' 성향이라는 걸 깨닫고 깔끔하게 포기하게 되었죠. 저한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다거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니 이제 잊으라던가, 후회할 선택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더 좋다고 종종 충고해주곤 했어요. 그 당시에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들을 곱씹어 보다 그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얻었던 게 있다면 타인의 말을 흘려 넘기는 습관 같아요. 점차 무뎌졌죠. 

 

감정적이고 타인의 감정에도 쉽게 공감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생체기 내는 말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요. '응, 그렇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뭐.' 이게 지금은 많이 생겼어요. 특히 지금의 남자 친구에게 많이 배웠죠. 남자 친구는 굉장히 이타적이고 공감을 잘해주면서도 잘 상처 받지 않아요. 애초에 자존감이 매우 높은 성격이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남을 더 초월해서 공감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저 사람의 생각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태도는 전혀 아니고요. 오히려 '저 사람의 어떠한 상황이나 일상이 편안하지 못해서 말이 삐죽하게 나오는 거니, 편안한 상태인 나는 저 말을 신경 쓰지 않거나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지. 뭐..' 이런 마인드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예전에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긴 한데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한번 더 제대로 인터뷰해봐야겠어요. 

 

어쨌든, 타인에 무감각해지거나, 무던해져보라고 한다면 그건 제가 닿을수 없는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은데요. 오히려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공감하고 이해해준 뒤에 잊어버리면 좀 쉬워지더라고요. 마찬가지로 과거를 자꾸 후회하지 말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 잊어버리라고 한다면 저는 그건 절대 해내지 못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지나간 일이니 가볍게 추억해보자,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그건 자신 있죠. 조금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되니까요. 

 

과거를 떠올리면서 우울해지거나 괴로워지거나 하지 않는 선에서 그리워해요. 절대 다시 올수 없는 지나간 순간들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임을 인정하고 추억하죠. 어제 단톡방에서 제가 "우리 참 많이 컸다" 라고 하니까, "큰 게 아니라 늙은 거야"라고 굳이 정정해 주던 찐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ㅋㅋㅋ 그런데 이 생각들마저 성장한 게 아니라 노화인가요? 

 

무서운 것 없었고 엄청나게 건강했던! 그 시절의 제가 그리워져요. 실패로 가득한 일상이었는데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잖아요.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지금은 축적된 성공의 기억이 더 많죠. 그래서 지금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 되어버려서 패기! 이런 게 아니라 경험치! 이런 느낌이에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또 하루 멀어져 간다" 고 노래했던 김광석의 노래도 저한테는 많이 지난 '서른 즈음에' 이니까요. "성장"이라고 쓰고 "노화"라고 읽히긴 하네요. 그래도 저는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삶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몸뚱이가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맞지만 내면의 어린아이는 아직도 자라면서 배우고 있거든요. 

 

사소한 사건들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감상에 쉽게 빠지는 대신에 깊게 생각하고 공감하는 저를 저는 오늘도 사랑합니다. 지나간 날들을 자꾸만 추억하고 잊지 못하는 건 매 순간의 저를 계속 끊임없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던 증거라고 생각해요. 잠깐의 틈을 보이면 우울의 저 밑바닥까지 달려가려는 저이지만, 반대의 길을 터주면 또 이렇게 위풍당당해지잖아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간 날들 때문에 괴롭지 않고, 추억할 날들이 있어서 평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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