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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진짜일기그리고단상

어린 날의 나에게 건네는 엽서

by 니나:) 2024. 6. 23.

한 번도 내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 정도면 평범한 집안에서 잘 먹고 잘 살아온 것 아닌가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동생들과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거리감이 느껴지고 감각이 무뎌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디선가 문제가 발생했다. 원인을 찾고 찾다 보니, 꾹꾹 눌러온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많았음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터져 나온 울음은 쉽게 그칠 수가 없다. 아무리 옆에서 안아주고 토닥여줘도 쉽지 않다. 충분히 울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울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내가 어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싸우고 있었다. 내가 내린 결정들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했고,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없었던 날들이 어른이 된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정말 많은 실수를 했고 어리숙했다. 그런데 그때에는 내 좁았던 시야 탓을 한 것이 아니라 세상 탓을 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는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느꼈다. 내가 약한지도 모르고 강해야 하니까 그냥 버텼다. 버티고 있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많은 상처들을 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감정 자해를 하면서 그것이 나를 위한, 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이제야 나는 내 어린 날들에 따뜻한 말을 건넨다.
 
널 다독여줄 어른이 없었고 따뜻한 충고를 들을 수 없었던 것, 그리고 혼자서 짊어지고 갔던 모든 무거움이 결코 네 탓이 아니다. 어렸기 때문에 실수를 한 것이고 판단을 잘못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 판단을 네가 내릴 필요도 없던 수많은 결정들에 죄책감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내가 상처받은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저 상처를 받게 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언제라도 한 번 따뜻한 말을 듣고 녹아버리게 되었던 날이 있었냐고 되묻고 싶다.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따뜻하게 건네지 못할 뿐이다. 그래도 그 안에는 단 한 번도 악하거나 못된 마음이 가득한 적 없었잖아.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어린아이가 아주 씩씩하게 서 있었어. 잘 해왔어, 정말.
 
이렇게 살아있어줘서 고맙고, 있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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