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그리고 연극쟁이가 단순한 회사원으로 산다는 것은,

안녕하세요. 니나입니다. 한동안 정보성 포스팅만 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장문의 글을 써볼까해요. 


2015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한국땅을 갑작스럽게 떠났었어요. 그러고 보니 2015년 10월에 단 일주일 짧게 한국을 방문했던걸 제외하면 2년 6개월동안 해외생활을 했네요. 그 전에는 일본여행 두번을 다녀왔을 뿐 해외 여행은, 특히나 유럽은 단 한번도 와보질 못했었어요. 제 직업은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였고, 늘 쉴새없이 20살부터 달렸거든요. 공연, 혹은 공연연습, 아니면 알바였죠.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한뒤에 저녁 공연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엔 하루 2회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지 않고 일만 했었죠. 그런데도 서른살, 제 손에 있는 돈은 천만원 정도 뿐이었어요. 그것도 원룸 보증금을 돌려받은 돈이었죠. 


그 천만원을 모으는데까지도 참 오래걸렸었답니다. 남들에겐 그다지 대단한 돈이 아닐수도 있겠지만요. 배고파 허기져도 라면 하나를 삼일내내 나눠먹었어야 하는 날도 있었고,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서 작고 차가운 원룸방에서 드라이어기로 몸을 녹여가며 잠을 청하던 날들을 생각해보면 제겐 제법 큰 돈이었어요. 알바 두세개를 나눠 뛰는 것은 예사였어요. 공연이 막바지로 다가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혹은 밤새도록 연기 연습을 해야했었기 때문에, 늘 알바는 두달 혹은 세달정도면 그만둬야 했었고요. 공연이 끝나면 버는 돈도 없이, 다시 다른 알바 면접을 보러 다녔죠. 그 와중에 오디션을 보거나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혹은 연기나 특기 레슨을 받기위해서 들여야 했던 돈들은 어마어마했죠. 일주일에 한번 배우는 수업에도 수십만원을 내야할때도 있었구요. 


고시원생활을 오년정도 했고, 처음 얻은 원룸에서 이년정도, 두번째 얻은 원룸에서 삼년정도 살았어요. 그렇게 십년 세월이 흔적도 없이 지나가 버렸었습니다. 갑자기 허망해졌었어요. 주변을 둘러보고 산것도 아니고 친구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제 시간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요. 저는 벌써 서른이었고 아무것도 이룬게 없었던것 같았어요. 제 포트폴리오에는 대다수 의미없는 영화와 연극 제목들이 자리만 채우기 위해 가득했어요. 돈이 되는 연극을 찾아서 할때도 있었고 아동극을 하기도 했고, 작품성을 보고 참여한 프로젝트도 많았는데 뭔가 다 아무것도 아닌것 같고 이미 다 잊혀진것 같았죠. 여행을 제대로 다녀본적도 없었어요. 그저 지방 공연을 다닌다고 이곳저곳 이동은 많이 했지만, 관광을 해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해외에서 살고있는 지금이 평범한 생활을 해보는 첫 경험이 되는것 같아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에 출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삶이요. 여행도 자주 다니고 있고 제법 연애다운 연애도 하고있죠. 한국에서 독일로 왔기때문에 삶이 크게 변화되었다기 보다는, 연극을 그만두면서 생긴 변화들이 더 크기도 하고요. 그만큼 제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생각들도 달라져만 갑니다. 십대와 이십대를 누구보다 뜨겁게 보냈다고 자부할수 있는데요. 삼십대는 그보다는 작고 소소한 행복들이 가득한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 하고요. 마저 이루지 못한 꿈들은 종종 저를 슬프게 만들어요.  


연극을 그만두기 위해서 해외로 도피했던것도 아니었고, 독일에 살기위해 독일로 왔던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슬퍼지는것 같아요. 저는 그냥 서른살 생일만큼은 평범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처음에는 라오스 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도착지가 독일이 되었고, 이왕 여행을 다녀올거면 1년 내내 워홀비자를 받아서 머물다 오자고 생각했죠. 어떤 계획이나 소망같은것이 없었어요. 그 당시 저는 이미 삶에 지칠대로 지쳐있었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무엇을 바라고 살았던건지 모든것이 흐릿했어요. 뭐라도 인생을 바꿔야만 했어요. '너는 그래도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잖아' 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그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잔인한건지는 겪어본 사람만 알수 있을거란 외로움이 가득했죠.


한국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것과 같았어요. 그 생각을 서른살에 처음 하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잔인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꿈이나 미래를 향한 희망같은것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나이가 되버린 거거든요. 꿈과 미래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이십대는 아름답고 화려해보이지만, 꿈만 있는 삼십대는 정말 초라해 보인다는걸 알았고요. 제게 주어졌던 시간이 단 십년뿐이었다는게 아쉬웠어요. 그래도 해볼것은 다 해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더 시도해 보고싶었던 모든 것들이 떠오르죠. 연출은 한 작품밖에 해보지 않았고 작품이 끝난뒤에는 저의 부족함만 확인이 되어서 더 큰 욕심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그래요. 아직도 저는 저의 연극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학로에 넘쳐나는 삼사십대 가난한 연극 예술인들처럼 살고 싶지도 않게 되어버렸어요. 


저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죠?




연극을 하던 십년의 세월동안에도 이정표 없는 길에서 헤매이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어요. 그러나 연극을 그만둔지 삼년이 넘어가는 지금에도 저는 이정표만 찾아 길을 헤매는 중인것 같아요. 평생을 이렇게 헤매이기만 해도 언젠가는 앞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을 받을수가 있을까요? 아니면 이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그 슬픔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어떤 직업군에 있든지 어떤 나이에 머무르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것 같아요. 삶을 대하는 태도에는 항상 변함이 없네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남자친구인 케네스의 확고한 면이 그런점에서 항상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미래에 대해 늘 계획이 있고, 자신이 해낼수 있을거란 확신이 넘쳐나죠. 가장 매력적인 점은, 그 기대가 무너지더라도 스스로에게 잔인해지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제가 그의 인생을 다 알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게는 항상 멋있게 보이고자 하는 입장이니 오해하는 부분이 있을수 있겠지만요. 제 눈에 비친 남자친구의 모습은 그러해요. 이미 한국나이로는 삼십대 후반이니까 꿈보다는 계획이 어울리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이제 그의 인생 계획에 제가 포함 되어 있다는 점이 좋기도 하고, 등떠밀려지는 느낌이기도 해요. 싫다는 것은 아니예요. 단지, 제가 제 미래에 대해 미처 정하기도 전에 이미 되돌이킬수 없어진거니까요. 저도 어찌해서든지 케네스와 함께하는 인생을 항상 그리고 있으니까요. 또 그것이 많은 확률로는 제가 독일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결정으로 이끌기 때문이죠. 


독일에 살면서 연극을 하는것도 쉽지 않네요. 언어는 늘 제 발목을 잡고 놓질 않고 생활이란 늘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죠. 돈을 벌어야만 하루 먹고 살수 있는데, 하루 먹고 살자니 공부를 제대로 할수가 없으니까요. 결론은 늘 돈이네요. 돈이 문제랍니다. 덕분에 종종 어떻게 하면 떼돈을 벌수 있을까 하는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삶이 늘 그렇죠 뭐. 이렇게 말할수 있는 것은 대단해 보이던 꿈도 꿈꿀때나 행복한 것이지, 결국 무엇을 이루고 나서는 별것 없다는걸 너무 자주 겪어서 그래요. 연극배우가 되고 싶던 시절엔 화려한 무대위의 생활이 정말 말그대로 꿈만 같았죠. 무대위에 오르기만 하면 세상을 다 가진것 같을 거라는 상상은 네, 그랬어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죠. 그렇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새옷 하나 걸려있지 않은 옷장에서 유니폼을 꺼내 입고 어디선가는 식당 서빙이나 사무실에 앉아 계산기나 두드리는 여자애일 뿐이었어요. 독일에 가면 화려한 유럽생활이 펼쳐질것 같았어요. 네, 화려한 유럽생활이죠. 하지만 여기서도 업무에 지치고 사람에 지치는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고 있어요. 


산다는 것은 결국엔 제 자아가 행복하고 만족하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쉼없이 찾는 과정일 뿐이죠. 가장 문제는 제가 무엇을 찾는지, 무엇을 찾아야 할지, 언제까지 찾으면 되는지 그 어떤 힌트조차 없다는 거예요. 이틀전에 할로윈 축제에서 신나게 마시고 춤춘 사람이 할 말로는 보이지 않겠지만, 요즘은 그래요. 어떠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든지 다 저마자 사연과 고통이 뒤따를거란걸 다 알것만 같아요. 저도 곧잘 남들에게 마냥 행복한 아이로 보여지기 때문에 잘 알아요. 생각 없는 아이, 고민 없는 아이, 행복한 아이라는 수사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을 허무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이죠. 그것이 효력을 다하기도 전에 생각보다 깐깐한 여자, 복잡한 애, 재미없는 애라는 수사가 붙어버리기 쉽상이라 늘 웃으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 어렵기도 하고요. 


저는 언제야 무엇을 찾을수 있을까요. 한때는 후세에 뭐라도 남겨줄수 있는 제법 위대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 꿈은 어디서 다시 시작하여 찾을수 있을까요. 고민이 깊어지는 오후입니다. 밥을 두둑히 먹고나면 어느 정도 고민이 정리 되지 않을까요?



인스타그램에 행복한 모습만 올리고 있지만, 늘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그래도 그냥 사는게 그냥 그저 그런 니나였습니다. 아마 다들 그렇게 살거야, 라는 위안만 스스로에게 남는 장문의 글이네요. :) 읽어주셔서 그 어느때보다 감사합니다. 

작성자

Posted by Nin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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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채찐빵
    2017.11.03 11:09 신고

    자신감 = f (외모, 돈, 집안) 이라고 카더러. 일배나 메갈리안 썰 읽으면서 한국에서는 그렇다는 느낌이 드는데, 아무레도 서구 사회는 클레스도 자신감 업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요. 서구 사회에서는 배우가 인텔리겐찌아의 대명사지요. 인텔리겐찌아는 귀족 사회의 일부. 니나님은 자신이 공주님이라고 생각하고 사세요. 공주님은 냄비 뚜껑에 라면 불어 먹어도 공주, 졸부는 호텔 신라 몽땅 전세 내어서 결혼해도 쌍님. 아침으로 삼양 라면 끓여먹어서 그런지 말이 다 라면 얘기가 되어 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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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30 08:20 신고

    1년전의 글을 이제서야 읽네요. 1년동안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느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느냐 항상 저울질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버랩되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뭐 마음대로 되는 경우가 있을까요. 20대의 치기어림으로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이야기 하겠지만, 30대가 넘고 체력도 딸리고, 정신적으로도 20대 같지 않다고 느낄 수록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야 되나 라는 생각도 합니다. 뭐 자신의 선택이겠지만,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위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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