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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land!!/독일의 일상

독일의 심심한 주말 보내는 법 - 야외 상영 단편영화제

by Ninab 2017. 7. 18.

저번 주말에는 켄과 함께 Kurz Film Festival 에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이동할수 있는 곳이어서 좋았는데요, 미리 티켓을 인터넷에서 (https://www.kurzfilmfestival.de/) 구매한 뒤에 출발했었습니다. 그 작은 곳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만석이라 티켓을 미리 구입하지 않았으면, 저희도 되돌아 가야 했었어요. 다행히 무사히 입장할수 있었습니다. ^^


* 프랑크푸르트의 Höchst에서 열리는 단편영화제 : Kurz filmfestival

- 맥주와 음식, 통통튀는 아이디어의 영화가 함께하는 로맨틱한 밤. (티켓 1인 10 유로 혹은 30유로)

- 신진 영화 감독들이 상금(1000유로, 약 120만원정도)를 위해 작품을 내놓고 관객들이 평가를 직접하는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페스티벌 자체는 후원금, 티켓판매금으로 진행되는 듯 하다. 

- 해외 영화제(오스카나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단편 영화들도 상영한다.

매년 하는것으로 보이는데, 저렇게 테이블이 있어 그 주위로 함께 앉기도 하고 의자만 따로 준비된 곳에서 앉아서 영화를 감상할수도 있어요. 저희가 방문한 저번주 일요일에는 한주 동안 높은 채점을 받은 작품만 추려 상영했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단편영화는 상금도 받고 여러번 상영되는 기회도 얻는데요. 맥주나 와인 커리부어스트, 작은 피자같은 음식들도 판매하고요. 저녁 7시 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한데, 영화 상영시작은 '어두워지면'이라고 써있는 점이 매우 유쾌했어요. 야외에서 상영하는 거라 따로 상영시작시간이 없이 '어두워져서 스크린이 보이는 시간'이 되니까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나와 인사를 하더라구요. 짧막한 영화 소개후 상영이 시작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날 총 7편의 영화를 보았는데요, 짧은건 4분에서 긴 것은 30여분까지 했어요. 

장소가 성 주변의 잔디밭이라 굉장히 낭만적이었습니다. 게다가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신이 나서 맥주가 마구 들어갔었어요.ㅎㅎ 배가 고파서 사먹은 7유로짜리 Flammkuchen (독일식 얇은피자) 도 굉장히 맛있었고요. 해가 늦게 져서 영화도 천천히 시작되었습니다. 거의 10시가 다 되었을때였고, 모두 끝나니 열한시 반정도였어요. 일요일 저녁에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서 영화를보다니요. 영화 시작전에 이미 조금 지쳤었기 때문에 의자에서 졸면서 영화를 관람했었어요. 첫번째의 로맨틱한 영화가 굉장히 좋은 느낌이어서, Sehr Gut! 진짜 좋다!를 외쳤었고요, 두번째 영화는 볼만한데? 세번째부터 여섯번째 영화는 독일인 특유의 철학적이며 진지한 느낌이 나는 지루한 영화들이었습니다. 마지막 4분짜리의 짧은 에니매이션은 이 모든것을 만회하겠다는 듯 굉장히 코믹해서 관객 모두 함게 깔깔거리고 박수를 치며 페스티벌이 끝났었죠. 

연필을 따로 지참하지 않아 채점 용지를 제출할수 없어 아쉬웠어요. 모두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남자친구인 켄이 굉장히 피곤해하면서 마치 일을 한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위에 언급했듯이 중간에 상영한 세네개의 영화가 굉장히 진지한 내용이었고 피로감을 느끼게 했었기 때문이예요. 누군가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브라더를 차용한 이야기부터, 한 학생이 우연한 계기로 극우파, 나치즘등이 되어가는 이야기, 마약중독자인 엄마가 자신의 아이와 생활하는 다큐멘터리였거든요. 생각하길 좋아하는 독일인의 취향에 맞춰서 배치된 것인지, 독일의 예술가들은 진지한것만 대량 생산해 내는 것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진지한 밤이 되어버렸네요. 굉장히 재밌었던 맨앞의 영화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고 하니.. 어떤 가설이 맞는걸까요? 

한국에서 살때는 단편영화제를 일부러 찾아다니며 보았었고, 배우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많은 단편영화에 출연도 해봤었어요. 아직도 종종 시간을 내서 인터넷에 업로드된 단편영화를 보곤할 정도로 저는 짧은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편이예요. 단편 소설이 주는 영감처럼, 단편 영화는 짧은 시간내에 하고 싶은 말을 강렬하고 간략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대단히 인상깊은 것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통통튀는 아이디어나 단상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펼쳐진다는 점도 좋고요. 그런데 독일인들에게 한국인들의 통통 튀거나 똥꼬발랄함을 바랐다는 건 좀 어리석었던 걸까요?ㅠ  

일을 하고 나온 것같다는 켄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 결국 사과해야 했어요. '미안해, 영화제에 오기로 한 내 제안이 잘못된거였봐' 제 사과를 들은 켄의 대답이 더 대단했어요.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라 이건 Deutschland(독일) 책임이야. 독일인의 영화에는 미래가 없어. 어쩜 이렇게 재밌게 못 만들지' ... 뭔가..갑자기 제 생각을 들킨 기분에 둘이 함께 깔깔거리며 독일인이 왜 영화를 재미없게 만들수밖에 없는지 토론 아닌 토론을 짧게 했었습니다.

우리의 토론 결론은, '그래도 월요일엔 왕좌의 게임 새 시즌이 나오니 푹 잠을 자자' 였고요. ^^;

그렇지만 일요일밤에 편안하게 릴렉스 하며 넓은 잔디밭에서 다같이 단편영화를 감상한 경험은 정말 특별했어요... 유명하지 않은 작품, 지루하거나 혹은 굉장히 까다로울수 있는 작품이 상영되는데도 집중해서 두시간 넘는 시간을 모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변의 독일인들 덕분에 정말 집중해서 잘 보았고요. 핸드폰 벨소리 한번 없었거든요!ㅠㅠ  사실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꺼번에 이렇게 독일인들만 모여있는 곳을 본것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날 동양인이 저를 포함해서 세네명밖에 되지 않았던걸로 기억해요. 켄의 설명으로는 이런 영화제가 독일인들의 취향에 딱맞는다고 하네요. 약간의 맥주와 잔디밭, 문화 생활 그리고 토론 등등...

그런데 왤까요, 아무래도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던 저는 영화가 끝나고 집에가는 길에 곱창에 소주한잔이 그렇게 땡기더라구요 ㅠㅠ 왁자지껄하게 야 그게뭐냐? 라며 씹고 또 씹고 혹은 되새김질하면서 그건 정말 끝내줬다며 짠 하고 싶었었어요. 뭐랄까 느긋한 연두부 같은 주말을 보내고 나니까 찐한 해장국 같은 주말이 땡기는 거죠. 

다음 주말에도 굉장히 재밌는 이벤트가 있어요. 다음 주말도 기대해 봅니다.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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